/ ECONOMICS, UBER, KAKAO

한국의 카카오택시 논란, 그리고 상생과 기술의 균형에 관하여

https://twitter.com/News_Y/status/1085050231014604801 결국 택시 업계의 승으로 끝났다. 나는 평소에 노조의 입장을 거의 항상 지지하는 편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그럴...

Posted by Daniel Hong on Tuesday, January 15, 2019

결국 택시 업계의 승으로 끝났다. 나는 평소에 노조의 입장을 거의 항상 지지하는 편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이건 택시 노동자에 좋은 일이 아니라, 택시 “업계”에만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거창한 미래 이야기보다 당장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가 다급한 기사님들 입장에서는 카풀의 도입으로 경쟁자가 생기는 것 자체가 두려웠을 거다. 생계를 위해 서비스업을 하는 쪽과, 여유를 가지면서 고객의 눈으로 서비스를 철저하게 기획하고 시행하는 쪽이 맞붙으면, 당연히 후자가 이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 문제는 기존의 노동자 문제와는 결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위험의 외주화와 열악한 근무조건, 낮은 급여 등의 문제는, 강자가 약자를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경우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카풀 문제는 강자가 약자를 착취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모순이 너무 심각해 미래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많은 기존 일자리를 앗아갈 새로운 패러다임이 순식간에 밀려오니 생긴 문제다. 카카오가 택시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의 택시는 이미 심각한 수준의 공급과잉 상태다. 사회 전반적으로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현대 기업에서 원하는 수준의 생산력 등을 갖추지 못한 분들이 돈벌이를 위해 이 시장으로 몰려 들어오는 거다. 이상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비스의 질은 그리 좋지 않다는 점. 전체적으로 낮은 서비스의 질 때문에 수요자의 입장에서는 불만이 쌓이고, 결국 카풀과 같은 대안 서비스를 찾을 수밖에 없게 된다.

많은 분들이 그 원인으로 “택시업계에 경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경쟁자가 들어오면 운송업계 전체적으로 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택시기사로서의 동기”를 잘 따져 보면 경쟁자가 도입된다고 해서 이들이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전제 자체부터 잘못되었다. 대부분의 기사들이 “먹고살기 위해” 택시 일을 하기 때문에, 이들은 기본적인 서비스의 개념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다. 법인택시의 경우 회사에서 어느 정도 교육이 있겠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영업을 하는 식당 자영업자와 같은 상황인 거다. 맛없고 비위생적인 작은 골목 식당이 자체적으로 서비스 개선과 차별화를 해낼 수 없다면, 대형 프랜차이즈에 밀려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골목 식당들은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니만큼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체적인 차별화를 해낼 여력이 없다. 백종원이 모든 골목 식당을 돌아다니며 직업 교육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택시 업계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기본적인 상황과 배경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경쟁만 도입된다면, 서비스의 질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경쟁에서 밀려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다른 마땅한 일자리가 있거나 다시 직업 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러니 택시 업계나 기사 입장에서는 다급할 거다. 이미 자신들은 갈 때까지 갔고 마땅한 탈출구나 해결책도 없는데, 대기업이 달려들어 마지막으로 남은, 자신들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일까지 빼앗아 가는 것처럼 보였을 거다. 그리고 당장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표현은 문자 그대로 사실이다. 이들이 괜히 투쟁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택시업을 “단순 생계유지 이상으로 하는” 택시업계 업주들이라면 몰라도, 노동자에게는 죄가 없다.

다만 노동자들이 “절대악”으로 묘사하는 반대쪽으로 와 보면, 이들도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다. 노동자만큼 생계가 직결되어 있는 수준으로 다급한 입장은 아닐지 몰라도, 이들 또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올라타지 못하면 똑같이 경쟁에서 도태된다.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인 자동차가 나오는데, 언제까지 마차 시대에만 머물러 있다면 금방 뒤쳐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지금은 한국 기업이었기 때문에 저지가 가능했지만, 만약 거대 해외 자본이 진입한다면? 자율주행 기술이 대중화되어 대리기사나 택시라는 직업 자체가 성립할 수 없게 된다면? 그 때는 노동자만 죽는 게 아닐 거다. 낙수효과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첨단 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또는 패러다임이 경제를 돌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거기까지 밀려나면, 노동자와 기업인의 갈등과 구분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일단 기업의 먹거리가 있어야 기업이 노동자를 채용하고, 노동자도 먹고살 수 있지 않겠는가. 일자리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는 투쟁할 대상조차 없다. 다같이 굶는 거다.

이 모든 것이 분명 더 편리한 방향으로의 발전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편리해진다는 것은 거꾸로 말해 인간의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지금까지는 “겉으로 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사라지는 단순 노동직 대신 “같은 수준”의 사람들이 “더 높은” 차원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질 수 있었다. 다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그 높아진 교육 수준을 감당하지 못한 이들은 점점 일자리를 찾기가 힘들어졌다. 비교적 풍족하게 살고 있는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으나, “사회 양극화가 심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아마 이런 기회의 불평등 문제 때문이었을 거다.

조금 더 멀리 보자면,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되어 교육의 기회가 무제한으로 주어진다고 해도 “일반적인” 인간의 지적 한계치로는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 또한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이 미친 듯이 달려가는 “기술발전”의 종착역이 이런 모습이라면, 인간의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점점 줄어들어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질 거다. 이것이 내가 개인적으로 “수요가 있는 한 충분한 일자리가 존재한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 이유다. 당장 비교적 풍족하게 살고 있는 우리는 그렇게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빈곤층과 소득 하위권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일자리가 풍족하더라도, 그건 어느 정도 기회가 주어졌을 때의 이야기다. 주어진 자원과 기회가 없다면, 아무리 일자리가 풍족해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이 기회의 부족 현상은 언젠가 중산층, 혹은 그 이후까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너무 거시적인 이야기를 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앞서 언급한 모델을 가정했을 때 지금 발생하고 있는 갈등은 앞에 놓여 있는 수많은 치열한 갈등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거다. 결국 이번 카풀 문제를 포함해 앞으로 있을 수많은 “기술 vs 노동자”의 갈등은, 기본소득제를 포함한 부의 강제적인 재분배와 복지정책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지금 시점에서야 지나친 복지정책은 근로 의욕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경제의 활력을 떨어트린다는 주장이 말이 되겠지만 (국가주도 계획경제가 그래서 실패로 끝났다), 일자리 자체가 사라진다면 아무리 근로 의욕이 있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평등하고 보편적인 복지에 문제가 있다면, 최소한 저소득층에 대해서만이라도 복지 혜택은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나야 한다. 그들이 일을 하지 않고 국가로부터 혜택만 받아간다고 불만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수요층이 만족할 수준만큼” 하지 못하는 거다.

직업병에 의한 사족: 강제적인 재분배에 기반한 경제정책은 정치적인 독재와 자유의 제한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탈중앙화와 무신뢰 장애허용 기술, 그리고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최초의 기술인 블록체인은 이러한 컨텍스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굳이 블록체인이 아니더라도, 중앙집권식이 아닌 탈중앙화에 기반한 거버넌스 모델은 그래서 중요하다. 굳이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거다.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