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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과 화상 통화가 부쩍 늘어나면서, 우리의 삶 상당 부분이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대면 만남에 관한 고정관념 때문에 지난 30년 넘게 일어나지 못했던 변화들이, 글로벌 팬데믹이 닥치자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재택근무로 재배치된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출퇴근 시간과 사무실의 물리적 위치에 관해 신경쓰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이었는지, 그리고 효율적인 리모트 근무 환경이 삶의 질을 얼마나 더 향상시킬 수 있는지 깨닫고 있는 듯하다. 식당을  가는 대신 온라인으로 그 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직접 장을 보러 가는 대신 온라인으로 장바구니를 배송받는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대신 온라인으로 영화를 렌트해서 보거나,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대신 본다. 이미 많은 디지털 기업을이 재택 혹은 원격  근무를 영구적인 선택지로 남겨둘 것이라고 선포한 시점부터, 변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왔다.

업무와 대인관계, 의식주, 취미를 포함한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이 온라인으로 급격히 옮겨가는 세상에서, 당연히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적인 인터넷 연결일 거다. 그런데, 분명 2020년씩이나 되었는데도 전 세계에서 인터넷 연결에 관한 불만은 끊이질 않는다. 유럽에서는 브로드밴드 대역폭 폭주로 인한 장애 우려로 인해 넷플릭스, 유튜브,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 유수의 기업들과 서비스들은 강제로 영상 스트리밍 품질을 매우 낮은 수준으로 고정해 버렸으며 특히나 유튜브의 경우 전 세계에 480p 해상도의 영상이 기본값으로 재생되도록 만들었다 (다른 서비스들과는 달리, 유튜브의 경우 더 고해상도 옵션을 선택할 수는 있다). 한국에서도 가뜩이나 부실했던 해외망이 폭주하는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하고 인터넷 연결이 인트라넷 수준으로 전락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인터넷 상에서의 엄격한 검열과 감청, 즉 통행제한 탓에 더 이상 인터넷을 “인터넷”이라 부를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국경을  물리적으로 넘지 못한다면 정보의 교환이라도 자유로워야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인터넷 사용료는 사용하는 사람이  이미 내는 줄 알았는데, 중간에서 문지기들이 “길을 자신들이 놓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양쪽에서 통행세를 걷는다. 90년대 인터넷이 처음으로 대중화될 당시 사람들은 국경 없이 자유로운 가상 세계를 꿈꾸었으나, 현실은 아직도 그와는 꽤 거리가 있어 보인다.

자동차가  날아다닐 것만 같았던 2020년에 아직도 기본적인 인터넷 사용조차 자유롭고 원활하지 못하다니,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해외망은 갑자기 왜 속터지도록 느려진 거고, 구글과 페이스북과 넷플릭스는 통행세를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고, 검열 없이  자유로울 줄만 알았던 인터넷 세상은 어떻게 다시 국경과 이념의 장벽에 갇혀버렸을까? 나는 그저 누워서 넷플릭스 편하게 보고 다른  나라에 있는 친구와 편하게 영상통화 좀 하고 싶은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넷플릭스 하나 보고 페이스북 타임라인 좀 볼 수 있도록 하는 건 사실 어려운 일이 맞다. 이와 관련된 내용들은 글 하나로 다루기에는 너무나도 방대한 내용이다. 하지만, 무엇이 그렇게 어려운 건지, 그리고 인터넷 기술이 사회정치적인 쟁점들과 어떤 측면에서 결합되어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현대의 인터넷이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개략적으로나마 짚어보고자 한다.


사실 인터넷에는 국경이 있다: 간략한 역사

“사이버 세상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사실 인터넷에는 국경이 있다. 그리고 그 국경은 기술적인 이유가 아니라, 주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결정되었다. 이 배경을 정확히 알려면 인터넷,  그리고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 어떻게 해서 탄생했고 그에 따라 어떤 아키텍처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현대 인터넷의 기본 구조는 미국 국방부 산하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1967년 개발한 ARPANET에서 출발했다. 이 네트워크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같은 조직 내에서 물리적으로 다른 컴퓨터에 접근하지 않고도 다른 컴퓨터에 있는 정보를 가져오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는 핵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통신선 일부가 파괴되더라도 군사정보 교환이 계속 일어날 수 있도록 장애저항이 있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현재의  관점으로는 터무니없는 소리 같지만, 이때는 미국과 소련 간 냉전이 한창인 시기였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양쪽 중 하나라도 버튼  까딱하면 바로 핵전쟁이다. 당신이 이러한 시기 군사정보를 교환하는 네트워크를 설계하는 엔지니어라면 어떤 선택을 내리겠는가?)

기존의 전화선과 같은 네트워크에서는 서킷 스위칭 네트워크를 사용했기 때문에 완전한 장애저항을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한 통신 세션당 하나의 회선(서킷)이 구성되므로, 연결된 전화국 사이의 선이 전쟁 등으로 인해 물리적으로 파괴된다면 연락을 할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방식이 패킷 스위칭 네트워크다. 두 사람 (또는 기기) 사이에 물리적으로 하나의 통신선을 구성하는 게 아니라, 전달되어야 할 데이터를 일정한  단위(패킷)로 쪼개 따로따로 전송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각 패킷이 어떤 경로를 사용하든 상관없이 일단 목적지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설사 일부 통신선이 파괴되었다 하더라도 다른 경로를 찾아 목적지에 도달하게 할 수 있었다.

1977년 3월의 ARPANET 네트워크 구조도.

이렇게 본래 유사시 장애저항을 위해 도입된 패킷 스위칭 네트워크에는 또다른 큰 장점이 있었다. 바로 기존의 네트워크 규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확장성이다. 기존에 사용되던 서킷 스위칭 네트워크는 통신을 할 때마다 교환국을 따라 물리적인 한 회선이 형성되어야만 했다.  당연하게도 이는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에 비례해 통신에 실패하거나 장애가 발생할 확률이 급격히 높아진다. 국경을 넘으려면  상대 국가의 교환국들과 물리적으로 회선이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자유로운 국제 통신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가만,  그런데 앞서 패킷 스위칭의 큰 장점은 데이터가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경로가 더 이상 상관없어진다는 것이라고 했다. 목적지에서  패킷을 원래 순서대로 조합할 수만 있다면 각각의 패킷이 어떤 경로로 도착했는지는 알 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패킷 스위칭 네트워크를 국가별로 여러 개 만들어서, 그 네트워크들끼리 패킷 스위칭 네트워크로 다시 연결되는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network of networks)를 만들면 어떨까? 이렇게 되면, 가령 러시아와 미국이 통신을 한다고 가정할 때, 러시아는 러시아 국내의 네트워크를 통해 일단 패킷을 보내고, 그  패킷들이 독일과 영국 국내의 네트워크를 거쳐 미국에 도달하는 것까지도 가능할 것이다. 꼭 독일과 영국이 아니어도 상관없고 독일과  프랑스, 프랑스와 영국이어도 된다. 중요한 건 두 국가 사이에 물리적인 회선이 없더라도, 다른 나라의 네트워크를 통하면 목적지에 관계없이 항상 자유로운 통신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이것이 현대 인터넷 아키텍처의 기본 아이디어다.

패킷과 패킷의 교환 방식을 정의했으니, 이제 쪼개져 각각 다른 경로로 전송된 패킷들을 손실 없이 원래 순서대로 어떻게 조합할지를 알아내야 한다. ARPANET에는 이를 해결할 메커니즘도 포함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Transmission Control Protocol, 즉 TCP다. TCP는 그 아랫단에서 패킷의 구조와 라우팅을 정의하는 Internet Protocol (IP)와 합쳐져 TCP/IP라는  패킷 교환 표준이 되었다. 1977년 위성 통신과 장거리 케이블을 이용한 3개국 (미국, 영국, 노르웨이) 간 네트워크 연결이  성공한 이후, 1982년 3월 미국 국방부는 TCP/IP를 모든 국방 컴퓨터의 데이터 교환 표준으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ARPANET, PRNET, 그리고 SATNET의 세 가지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첫 번째 “인터넷" 통신 실험 구조도. 1977년 11월.

TCP/IP가 패킷 교환 네트워크의 표준이 되자, TCP/IP와 호환되는 네트워크의 수는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1988년 과학 연구를 위한 NSFNet이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 호주, 뉴질랜드에 구성되어 있던 네트워크까지 연결하도록 확장되면서 인터넷은 대륙간의 연결까지  담당하게 되었고, 1989년에는 미국과 호주에서 NSFNet 등의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국제 라우팅을 지원하는 민간 중심의  TCP/IP 호환 네트워크들(Internet Service Provider, ISP)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인터넷은 민간  기업들이 구성한 네트워크들에 의해 급격히 확장되다가, 1995년 NSFNet이 해체되면서 완전히 민영화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인터넷”이라 부르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인터넷이 아닌 월드와이드웹 (World Wide Web)으로, 인터넷이라는 국제 네트워크 위에 링크로 서로 연결되는 텍스트인 “하이퍼텍스트”라는 개념을 더한 것이다. 인터넷 그 자체는 단순한 국제 네트워크일 뿐이다.  1991년 CERN에서 근무하던 팀 버너스 리 경에 의해 개발되어 배포된 월드와이드웹 — 즉 TCP/IP 위에서 구동되는  HTTP, HTML, 웹 브라우저 등의 프로토콜과 소프트웨어 — 은, 주로 연구기관들에서 정보 교환을 위해 사용되던 인터넷을  모두가 사용하는 네트워크로 대중화하는 데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몇 가지 사실이 눈에 띌 수도 있겠다.

  1. 우리가 “인터넷”이라 부르는 네트워크는, 미국에서 처음 구성된 네트워크가 미국 내의 다른 TCP/IP 호환 네트워크들과 서로 연결되고, 그것이 다시 다른 국가의 TCP/IP 네트워크들과 연결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즉, 처음부터 미국 중심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인터넷은 철저히 “국경”이라는 개념을 전제조건으로 깔고 만들어졌다. 인터넷 그 자체에는 국경이 없지만, 인터넷이  연결하는 각각의 IP 호환 네트워크에는 국경이 있다. 한 국가의 국경 내에 있는 네트워크는 그 국가의 규제를 따르므로,  본질적으로 여기서도 국제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국경 없이 사고할 수 있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국경의 개념 위에서  만들어진 국제 네트워크 덕분인 것이다.
  3. 인터넷을 구성하는 네트워크들이 모두 민영화되면서, 본질적으로 여기에서도 정치와 경제의 논리가 작용하게 된다. 비교적  작은 네트워크들은 돈 많고 트래픽이 많이 몰리는 다른 ISP들의 네트워크에 돈을 내고 연결해야만 하고, 권력을 가진 대규모  ISP들과 네트워크들은 서로 간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해 서로의 트래픽을 균등하게 교환할 수 있다.

3번은 무슨 삥 뜯는 마피아 조직 같은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현대 인터넷은 저런 방식으로 돌아간다. ISP의 네트워크를 통한 라우팅이 동반되는 이상, 통신 자체가 P2P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엄밀하게 따지자면 항상 중앙화된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것이다. “탈중앙화된” 블록체인이라 하더라도 이건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러한 현대 인터넷의 구조는,  망중립성과 망사용료 문제, 라우팅 경로 차단을 비롯한 수많은 인터넷 관련 문제들의 원인이 되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인터넷에서의 권력: 통행세를 내던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가던가

규모가 작고 연결되는 네트워크의 수도 적었던 초창기의 인터넷은, 네트워크끼리의 관계가 비교적 평등했다. 하지만 연결되어야 할 네트워크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전달되어야 할 트래픽도 급증하면서, 네트워크들은 서로 계층(Tier)을 형성하게 되었다.

Tier 1 ISP는,  인터넷 상의 다른 모든 네트워크들과 아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통신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말한다. 별도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네트워크와 서로 주고받는 트래픽의 양이 워낙 커서 서로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서로의 망에 대한 망사용료가  사실상 상쇄되었다고 판단하고 별도의 사용료 정산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피어링(Peering)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Tier 1 ISP들은 단 한 푼의 망사용료도 지불하지 않으며, 오직 하위 ISP들로부터 사용료를 지속적으로 받기만 하는 구조이다. 물론, Tier 1 ISP가 되기 위해서 투자해야 할 인프라 비용을 고려한다면 지속적인 지출도 상당하겠으나, 망사용료의 흐름만 본다면 비용을 받기만 하는 입장이라는 의미다.

Tier 2 ISP는, 일부 ISP들과는 피어링을 통해 별도의 망사용료 지불 없이 트래픽을 주고받지만 처리되는 트래픽의 양이 비교적 적어 티어1 ISP에 망사용료를 지불하고 접속해야 하는 네트워크로 정의된다.

Tier 3 ISP는 트래픽 전량을 티어1이나 티어2 ISP로부터 구매해야만 하는 ISP를 말한다. 주로 중소형 ISP나 인프라가 비교적 발달되지 않은 지역의 ISP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 중 사실상 인터넷의 “코어”를 구성하고 있는 Tier 1 ISP들의 목록을 보면, 위키피디아 기준으로 다음과 같다. 엄밀하게 말해 Tier 1이라고 명확히 자를 수 있는 기준은 없으나, 대신 ISP들이 운영하는 Autonomous Systems (AS)에 대한 랭킹이 존재하고 (인터넷 상에서의 라우팅 중요도를 나타내는 랭킹), 이를 기준으로 인터넷 전체를 망사용료 지불 없이도 접근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따진다.

이  중 대부분의 네트워크들은 본사가 위치한 국가에 관계없이, 피어링을 위해 전 세계에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나열된 16개사 중 본사가 미국인 곳만 6곳이며 유럽 전역(영국 포함)이 6곳, 일본 2곳, 홍콩이 1곳, 인도가  1곳이다. 인터넷에 대한 서구권의 영향력이 바로 보이는 대목이다.

서로 더 많이 연결되어 있을수록, 그리고 더 많은 트래픽을 처리할수록 인터넷에 이들 기업 —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국가 — 가 행사하는 영향력은 커진다. 특정 기업이 운영하는 네트워크(AS)를 보이콧해 (AWS, 구글, MS Azure, 넷플릭스 등등) 접속에 현저한 장애를 줄 수도 있고, 담합으로 터무니없는 망사용료를 요구해 스타트업들을 고사시키고 큰 이익을 챙길 수도 있다. 마음만 먹으면 트래픽 이동 경로를 지구 한 바퀴 돌게 만들 수 있는 곳들이 이런 대형 ISP들이다.

이런 일이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인터넷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칙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티어1 급으로 전 세계적인 규모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규칙들이 국가 내의 국소적인 단계에서 점차 폐기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인터넷 규칙의 파괴는 사용자와 통신사업자(CP)의 네트워크를 이어주는 ISP의 배만 더욱 더 불리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스타트업들을 망사용료 문제로 고사시키며, 가격은 올라가면서도 망의 품질은 지속적으로 저하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모든 패킷은 평등할 것이니: 망중립성 원칙

이러한 규칙들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그 유명한 망중립성 원칙이다. 망중립성이란, 쉽게 말해 통신사는 패킷의 출발지나 도착지에 따라 그 전송 과정이나 사용자, 그리고 사업자에게 차등이나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되고 모든 패킷을 평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통신사는 사실상 인터넷에 대한 소비자의 접근 권한 자체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망중립성이 없다면, 통신사와 특수한 이해관계가 있거나 별도로 계약을 맺고 돈을 지불한 기업이 트래픽에서 우위를 갖고, 나머지는  밀려나거나 — 통신사나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경우 — 아예 접속을 차단당할 수도 있다. 더 이상 국경을 초월한 자유시장이  성립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인터넷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원하는 서비스를 사용할 자유가 박탈당하는 것이다. 갓 시작하는  스타트업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이미 대규모 네트워크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는 넷플릭스 같은 기업들도 피해를 본다. 망 사용 비용이 상승할 뿐만 아니라, 서비스 품질이 크게 저하되어 다른 기업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하지 못하게 되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택배사가  특정 대형 유통업체들만 유료로 독점계약을 맺어 그쪽에서 접수되는 물류만 우선 처리하고, 나머지는 물류 인프라 부족을 이유로  배송을 느리게 처리하거나 아예 접수를 거부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렇게 되면, 당연히 같은 택배사를 이용하는 소규모 업체들은 배송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을 할 수 없다. 대형 유통업체들 또한, 배송비 이외의 추가 지출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므로 손익을 따져보면 그리 큰 이득은 아니다. 유일하게 큰 이익을 보는 쪽은 물류 인프라 확장에 투자하지 않고도 중간에서 돈을 더 벌게 되는 택배사다. 이런 일을 허용한다고 택배사끼리 경쟁해서 택배비가 내려가지 않는다. 서비스 품질은 저하되고, 비용은 올라간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최근 들어, 자유시장경제의 이름으로 망중립성이 점차 철폐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2014년부터 오바마 행정부의 인터넷 브로드밴드 서비스를 정보 서비스가 아닌 통신 서비스로 재분류하는 조치로 인하여, 인터넷이  “통신공공재”로 분류됨으로써 망 중립성이 법적으로 보장되었다. 이 조치가 추진될 당시,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트윗하며 망중립성의 강제가 “보수매체를 겨냥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말대로 트럼프는 2017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자마자 오바마 행정부 당시의 조치를 뒤집고, 인터넷 서비스를 공공재로서 규제의 대상인 Title II (Common Carrier Service)에서 FCC의 규제를 받지 않는 Title I (Information Service)으로 재분류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사실상 망중립성 원칙의 폐기를 선언한 것으로, 세계 최강대국이자 Tier 1 ISP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인터넷 패권주자인 미국이 이러한 조치를 내리자 다른 국가들도 하나둘씩 망중립성 원칙을 폐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망중립성  원칙에 관한 논쟁은 주로 “Dumb Pipe vs. Smart Pipe”에 관한 것으로, 한정된 트래픽 처리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인위적인 개입 및 자원의 재분배가 필요하느냐는 것이 주요한 논점이다. 망중립성 반대 측의 논점은, 어차피  인터넷 사용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서비스들은 대기업들의 것으로 한정되어 있으니, 트래픽 경로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Dumb Pipe”) 이들 대기업들로부터 망사용료를 추가로 받고 이들 기업의 서비스로 가는 트래픽을 우선 처리함으로써  (“Smart Pipe”), 일반 사용자 대부분의 유즈케이스에서의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키면서도 추가로 징수한 망사용료로 부족한  네트워크 인프라를 추가로 확충하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사회기반자본 민영화가 초기에 내세웠던 효율성 논리와 상당히 유사한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시장자유화로 인한 추가 비용징수와 인프라 구조조정으로 얻은 이득을 기업이 인프라 확장에 반드시 재투자할 것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는 한국에서도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인데,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도록 하자.

페이스북과 넷플릭스 전쟁: 왜 인터넷 하나 때문에 고통받아야 하는가

사건의 발단은 2015년, 당시 미래창조과학부가 한국 통신 3사 간의 망사용료를 계산하는 규정인 상호접속고시를 개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신규 상호접속고시가 인터넷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링크된 바와 같이 장문의 기고문으로도 모자라므로, 이해를 돕기 위해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한국은 네트워크 사업자의 계위(즉 Tier)를 규정하는 기준을 법으로 정해놓고, 정부가 ISP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고 비용정산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사전에 지정된 네트워크 티어를 기준으로 직접 지정하고 규제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는 네트워크 간의 자율적인 생태계 구성 및 피어링을 통해 최대한의 접속경로 최적화를 꾀한다는 암묵적인 국제 규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으로, 특히 해외망에서 이로 인한 접속경로 비효율이 잦았다.
  • 그런데  2015년 정부는 이 ISP간의 접속 및 망사용료 정산 규칙인 상호접속고시를 개정하여, 같은 티어의 네트워크끼리 피어링을  수행하는 경우에도 통상적인 무정산 방식 대신 트래픽 발신자에게 망사용료를 부담시키고, 그 기준을 기존의 접속용량 (즉, 정해진  시간 내에 보낼 수 있는 데이터의 최대 용량) 대신 발신트래픽 (보낸데이터의 총량)으로 정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비유하자면,  기존에는 양쪽 방향으로 같은 8차선 도로가 놓여져 있다면 양쪽으로 차가 몇 대가 가는지와는 상관없이 서로 통행료를 면제했다면,  이제부터는 톨게이트를 설치하고 양쪽 도로에 차가 정확히 몇 대가 지나갔는지를 일일이 계산해 그 차이만큼 더 많은 차를 보낸 쪽이  통행료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종량제가 도입된 것이다.
  • 이런 식의 규제에는 문제점이 수도 없이 많은데… 먼저, 네트워크 티어(계위)라는 개념은 순전히 편의를 위해 임의로 만든 개념이지 실제로는 엄격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인터넷에서의 권력” 문단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엄밀하게 말해 Tier 1이라고 명확하게 자를 수 있는 기준은 없다. 단지 ASRankPeeringDB와  같이 네트워크 간의 영향력과 그 관계를 표시하는 데이터베이스가 있을 뿐이며, 이마저도 현실을 명확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실제 세계에서는 티어의 구분 없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네트워크 사업자들끼리 비용정산 없이 공개적, 혹은 독점적으로  최대한 비용정산 없이 피어링을 하거나, IX (Internet Exchange Point)에서 평등하게 트래픽을 교환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티어의 기준을 정부에서 칼 자르듯 잘라 정상적인 네트워크 생태계가 형성되지 못하도록 막아 버리면 당연히 접속경로가 이상해지고 비용은 올라가며 속도는 느려진다.
  • 비용정산 방식을 정부에서 강제하는 것 자체도 이상하다. 괜히 피어링이 피어링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머리아프게 트래픽 발생량을 서로 계산하면 그것 자체도 또 서로 비용이니, 그러지 말고 대충 퉁쳐서 서로 돈을 받지 말자는 게 피어링이다. 피어링은 인터넷 접속경로 개선의 일등 공신인데, 복잡한 비용처리 없이 서로 직접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많으면 많을수록 목적지까지 거쳐야만 하는 네트워크의 수가 줄어들고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이걸 못하게 막아버렸으니 부작용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세계 최대 CDN 네트워크 운영사인 Cloudflare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Warp+/Argo 사랑합니다)

South  Korea is perhaps the only country in the world where bandwidth costs  are going up. This may be driven by new regulations from the Ministry of Science, ICT and Future Planning,  which mandate the commercial terms of domestic interconnection, based  on predetermined “Tiers” of participating networks. This is contrary to  the model in most parts of the world, where networks self-regulate, and  often peer without settlement. The government even prescribes the rate  at which prices should decrease per year (-7.5%), which is significantly  slower than the annual drop in unit bandwidth costs elsewhere in the  world. We are only able to peer 2% of our traffic in South Korea.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브로드밴드 통신 비용이 증가하고 있는 국가로 보인다. 이는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발표된 새로운 규제 탓으로  보이는데, 이 규제는 사전에 정의된 “티어”의 개념을 바탕으로 민간 네트워크들이 서로 연결되려면 만족해야만 하는 조건들을  강제한다. 이것은 네트워크들이 자율적으로 규칙을 만들고, 네트워크들끼리 특별한 합의 없이도 자주 피어링을 하는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과는 상반된 모델이다. 한국 정부는 심지어 접속 비용이 매년 감소하는 비율(-7.5%)까지 미리 정해 놓았는데 이것은 세계 그  어느 나라의 연간 접속비용 감소율보다도 훨씬 느린 수치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발생하는 트래픽의 오직 2%만을 피어링으로 처리할 수  있다.

(각주:  개정 상호접속고시 탓에 무정산 피어링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매우 제한적이고, 나머지 모든 트래픽을 구매해야 해 비용부담이 매우  크다는 뜻. 실제 한국 통신사들의 잇따르는 해외망 장애로 Cloudflare Warp+에 대한 수요가 한국에서 급증하자, 트래픽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미 한국 엣지 CDN으로 가야 할 트래픽을 미국으로 돌려버리고 있다.)

그리고 부작용은 바로 터졌다. 개정된 상호접속고시가 시행된 해인 2016년, 일부 통신사에서 페이스북 접속 속도가 극도로 느려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수많은 한국 사용자들이 원활하게 페이스북 서비스를 사용하지 못해 불편을 겪었는데, 그 원인을 조사해보니 바로 저 개정 상호접속고시의 트래픽 종량제가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었다:

  • 페이스북은  국내에서 접속 속도를 개선하기 위해, KT를 통해서 캐시 서버를 운영하고 있다. 기존의 접속고시상으로는 다른 통신사들도 무정산  피어링을 통해 돈을 받지 않고 이 캐시서버에서 데이터를 받아올 수 있었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 개정 상호접속고시가 시행되자, 통신사들은 기존에 멀쩡하게 무정산 피어링을 하고 있었음에도 자신이 발송하는 트래픽의 총용량을 기준으로 망접속료를 다시 계산해 서로에게 부과해야 했다.
  • 그런데  페이스북은 한국 캐시서버를 KT를 통해서만 운영하고 있었으므로, SKT/SKB와 LG U+ 사용자의 경우에는 KT가 이 두  통신사에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보내주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발신자가 망사용료를 부담하는 개정 상호접속고시 아래에서, 기존에는  무상으로 트래픽을 처리해주던 KT는 갑자기 이 두 통신사에 거액의 망사용료를 납부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 따라서,  점점 불어나기만 하는 망사용료가 불합리하다고 판단한 KT는 페이스북 본사에 다른 두 통신사로부터의 KT 캐시서버 트래픽을  차단하고 트래픽 경로를 우회해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페이스북은 이 요청을 받아들여, 다른 두 통신사의 경우 캐시서버 없는 본래  접속경로인 홍콩 경로를 통해 페이스북 네트워크(AS)에 접속하도록 라우팅 경로를 바꾸었다.
  • 문제는  이 과정에서 너무 많은 트래픽이 해외 우회 경로로 몰리면서, 말 그대로 패킷이 지구 한 바퀴를 도는 (…)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해외망이 KT에 비해 부실했던 두 통신사의 네트워크에서는 급증한 해외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하고 접속속도가 극도로  느려졌고, 이는 접속 장애로 이어졌다.

이쯤 되면 이 사태의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는 분명해 보이는데, 이 사건을 조사한 방송통신위원회는 엉뚱하게도 페이스북에 “고의 라우팅 경로 변경을 통해 국내 사용자의 이익을 현저하게 침해하고 이용을 제한한”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페이스북은 소송을 제기했고 사법부는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방통위는 즉각 항소해 현재 2심이 진행중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최근 유사한 사건이 하나 더 터졌으니, 바로 넷플릭스의 접속 품질과 망사용료를 둘러싼 소송이다. 최근 1년 새  넷플릭스 수요가 크게 늘고, 거기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넷플릭스 트래픽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해외망이 원래 부실했던  S모 통신사와 넷플릭스는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어 왔다. 요지는 넷플릭스 트래픽으로 인해 S모 통신사의 해외망에 큰 부담이 발생해  다른 사용자의 이익을 침해했고, 따라서 해외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주범(?)인 넷플릭스가 망사용료를 납부해 해외망 투자에 대한  비용을 일부 보전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넷플릭스 측은 자신들이 통신사의 망 투자비용 보전을 해 줄 이유도, 책임도 없다며  반발하고 있으며, 대신 무상으로 한국에 캐시서버를 설치해줄 것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한 상황이다. 양측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재를 받다가, 넷플릭스 측이 4월 14일 먼저 통신사 측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중재절차는 자동으로 정지되었다.

이것이  높으신 나으리들의 코털을 건드린 모양인지, 국내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콘텐츠 제공자(CP)에도 망 품질 유지를 위한 의무를  부과하고 국내에 대리인을 지정하도록 하는 일명 “넷플릭스 무임승차 방지법”이 지난 5월 20일 국회를 광속으로 통과했다. 시행령에  무엇이 담길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망 품질 유지”의 범위에 CP의 망사용료 지급을 의무화하는 조항이 담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혹자는  이 법안이 “국내 기업과의 역차별을 해소하고 한국 통신사의 인프라에 무임승차하는 것을 방지”한다고 주장한다. 인터넷 대기업들의 망  무임승차에 관한 논란은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도 끊임없이 있어 왔다. 이는 피어링의 특성상 실제 발생하는 트래픽이 아닌 네트워크  대역폭을 기준으로 계약이 이루어지기 때문으로, 양쪽이 균등한 대역폭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한쪽이 다른 쪽보다 발생시키는 트래픽  총량이 훨씬 더 많은 상황에서도 무정산 원칙을 유지한다면 이는 무임승차가 아니냐는 것이다.

상기 개정 상호접속고시와 동일한 이유로, EU에서도 통신사들의 연합체인 ETNO가 무임승차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적이 있다. 이에 EU의 규제기관 협의체인 BEREC은 해당 문제를 면밀하게 검토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놓았다.

Both  QoS and QoE, from the broad end-user service point of view, include  many parameters which are beyond the control of the ISP offering  connectivity, such as the terminal equipment and local network (e.g.  home network) as well as end-user expectation and context — as opposed  to the Internet access service it is delivering.
This  concept cannot be maintained on the Internet, since the network layer  is decoupled from the application/content layer. The “CAU service” is  delivered on top of the IP network. Thus the end-to-end quality in terms  of article 22(3) USO D relating to the practices of operators is  concerned only with the IP packet transfer at the network layer, i.e.  the network performance. Network performance is the concept used for  measurement of the performance of network portions under the control of  individual providers . When interconnecting several IP networks the  performances of the single networks are summed up to an end-toend  network performance from UNI (user network interface) to UNI. The  end-to-end network performance (UNI-to-UNI) is referred to as end-to-end  IP service or traffic class.
Therefore,  IP interconnection within the Internet ecosystem relates to the  interconnection only at the network layer, not at the application layer  (e.g. interconnection of voice application domains). QoS interconnection  is related to the quality of IP traffic classes and their maintenance  across networks.
  • 망종량제는  직접적인 연결이나 지정된 경로의 개념이 제공되지 않는 인터넷 아키텍처에는 맞지 않으며, 유지할 수도 없다. 이와 같은 개념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IP 프로토콜 위에 트래픽 양과 목적지 등을 정확하게 추적하는 또다른 프로토콜을 추가로 개발해 넣어야 할  것인데, 이 일은 누가 할 건가?
  • 또한,  현실적으로 “망의 품질”이라는 것은 명확하게 정의될 수 없는 개념이다. 각 개인의 가정에 있는 장비의 차이나 망 설비의 차이,  개인별로 요구하는 품질의 하한선 등이 각자 모두 다르며 이는 ISP가 통제할 수 있는 요건들이 아니다.
  • 마지막으로,  현대 인터넷에서 네트워크 레이어(인터넷)는 애플리케이션 레이어(월드와이드웹)와 완전히 디커플링되어 있는 구조이므로 “망 품질”과  “서비스 품질”은 완전히 별개의 건으로 취급되어야 할 문제이다. 전자는 IP 프로토콜, 후자는 그 상위 프로토콜에서 처리되는  건이기 때문이다.
  • 고로, 망종량제의 개념은 분산화된 방식의 효율적인 라우팅을 추구하는 인터넷의 기본 정신과 맞지 않으므로 비현실적이다.

앞서 패킷 스위칭 네트워크가 애초에 왜 등장했는지 기억하는가? 데이터가 그 전달 경로와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전달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망종량제라는 것은 인터넷 상에서의 이 “전달 경로”가 일정하다는 것을 가정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만약 CP가 ISP에게 망  사용 비용을 납부한다 하더라도 꼭 돈을 내서 증설한 그 네트워크를 거쳐서 트래픽이 전달되리라는 법은 없다. 원래 그러라고 만든 게 패킷 기반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시간당 정확히 사용량을 계산할 수 있는 전화선이 아니다.

그렇다고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서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다고 하더라도, 애플리케이션 레벨에서는 국경의 개념이 없는 인터넷의  특성상 완전히 한국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중단”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CP 측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국어 지원을 중단하는  것 정도밖에는 없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트래픽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 건가? 망 사용료 안 낸다는 명목으로 국가에서 접속  차단이라도 할 건가? 그렇게 된다면 인터넷의 또다른 규칙, 접속의 자유를 지나치게 위반하게 되므로 그 자체로도 또다른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이미 DPI로 SNI 필드 들여다보고 DNS 하이재킹 하는 것부터 잘못되긴 했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한국 통신사에  망사용료를 납부하지 않는 모든 웹사이트의 서비스를 제한해야만 하는데 또 그렇게 하지는 못하잖나. 독재국가도 아니고 말이다.

결론: 진정한 국경 없는 인터넷을 위하여

유독  심하게 부각되고 있긴 하지만,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터넷 상 AS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  망중립성을 폐기한 이상, 미국의 ISP들도 이제 거꾸로 외국의 기업들에게 동일한 망사용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만약 콘텐츠  사업자가 이 요구를 거부할 때 미국의 대형 네트워크들이 불이익을 주기 시작한다면 이는 보통 큰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모든 사용자의 라우팅에 영향을 주어, 강제로 패킷이 지구 한 바퀴 돌고 오게 하는 페널티를 줌으로써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기업들에 경쟁 우위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국 우선주의가 더욱 심화될 경우 미국이나 유럽의 대형 네트워크들이 자국의 기업에 라우팅 우선권을 주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인터넷은 협력의 장이 아닌 패권국들의 전쟁터로 돌변하게 될 것이다.  잦은 라우팅 경로 우회의 피해는 그대로 소비자들과, 인터넷 기반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들에게 돌아간다. 한국처럼 “Tier  1” 네트워크를 구축할 만큼의 트래픽이 발생되지 않는 국가들은 해외망이 극도로 제한되어 더 이상 이른바 “인터넷 강국”이 아니게  된다.

이미  우리는 라우팅 경로의 변경과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프로토콜이 얼마나 큰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수 차례 경험했다. 2008년에는  유튜브의 반이슬람 동영상이 자국민을 자극할 것을 우려한 파키스탄 정부의 명령으로 접속 차단을 위해 생겨난 가짜 라우팅 경로가  BGP 구성 오류로 인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자국의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의 유튜브 접속을 2시간 동안 차단해 버렸다. 비교적 최근인 2019년 6월에도, 버라이즌이 잘못된 BGP 경로를 전파하는 바람에 인터넷 전체 트래픽의 상당 부분이 접속 장애를 겪는 일이 있었다. 이런 일들이 실수가 아니라 고의로, 무기로서, 그것도 지속적으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면 일상이 사실상 마비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통신사 자신들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괜히 CP들이나 외국 기업들하고 싸워봤자,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자사의 인터넷 접속품질만  깎아먹는 짓일 뿐이다. 따라서 자율적으로 평화로운 인터넷을 지키는 데에 협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황이 바뀐다면 언제든지 현  인터넷의 질서는 붕괴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인터넷에는 국경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현대 인터넷의 아키텍처 그 자체는 1960~1990년대, 즉 정보의 교환이 자유롭지 않아 국경의 개념이  아직 관념적으로 매우 강하던 때 구축되었다. 지금이야 유튜브로 미국의 뉴스 채널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지만, 인터넷 이전에는  외국의 뉴스 채널을 접하려면 국제우편으로 뉴욕타임즈를 배달시키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이런 시절에는 전 세계를 잇는  네트워크를 구축할 때, “국가 간 네트워크의 연결”로 생각하지 “국경과 상관없는 사람과 사람간의 연결, 그리고 정보의 자유로운  교환”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정보적인 국경의 장벽을 지워주었지만 그 자체로서는 국경의 장벽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탈중앙화된 네트워크를 추구했지만 IP 라우팅은 기존 정치적 패권국들이, 애플리케이션은 새롭게 만들어진 인터넷 공룡들이 주도권을  가져갔다. 그래서 아직도 공룡과 공룡, 국가와 기업, 국가와 개인, 국가와 국가 간의 싸움이 일어난다. 어떤 국가들은 자국 내의  모든 네트워크가 해외로 나가는 길목을 철저하게 검열해 통치 체제의 붕괴를 막으려 한다. 최악은 피했지만, 결코 이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현대  인터넷은 그래서 “근본부터 글러먹었다”.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인터넷이 퍼트렸던 바로 그 무국경성을 정작 그 자신은 갖추지  못해 아직까지도 수많은 문제들과 갈등을 낳고 있어서다. 이미 온라인 비즈니스에는 더 이상 국경이 필요없지만, 정부들은 여전히 낡은  국경의 개념으로 그들을 통제하려 하고 있다. 돈줄을 죄거나, 현지 기업과의 형평성 문제를 대거나, 접속을 통제하고 기업가에게  마음대로 치외법권을 적용한다.


2008년  당시 유튜브 접속 차단 사태를 보고서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정말 만약에, 최악의 경우지만, 기술적으로 완전하다고 생각한  인터넷이 사람들 간의 정치적인 이유로 붕괴될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8달 뒤, 비트코인 백서를 받았다. 이것이야말로 사실상  마지막으로 국경에 묶여있었던 돈을 자유롭게 하고, 인터넷의 기본 체질을 바꿔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트토렌트나 Tor,  그리고 zeroconf 같은 기술들은 흥미롭긴 했지만 무언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언가에  홀렸는지, 이건 달라보였다.

12년이  흘렀고 우리는 여전히 같은 문제로 싸우고 있다. 비트코인은 돈이 아니라 투기자산, 그리고 어두운 돈의 통로가 되었고 정부들은  비트코인 또한 규제할 방법을 찾아냈다. 거품이 생겼다 다시 꺼진 이후 초기 커뮤니티 멤버들은 다들 하나둘씩 떠나갔지만, 유독 나만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건 이 글에서 논의한 근본적인 문제들의 답을 언젠가는 찾고 싶어서였다.

지금으로서는 연약한 이해관계와,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는 망중립성에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는 없겠다. 진정한 국경 없는 인터넷은 아직까지도 한참 멀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