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제목을 지을 때 고민을 꽤 많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으로 "블록체인" 업계에 종사한다고 하면 절대 다수는 (i) 토큰을 직접 팔거나, (ii) 토큰의 경제 모델에서 창출되는 추가적인 수익 (트레이딩, 채굴, 스테이킹 등), 그리고 (iii) 앞서 언급된 (i), (ii)의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곳과 협업하여 그 중 일부를 가져가는 방식, 셋 중 한 가지 방법을 통해 수입을 얻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이 글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와 같이 토큰 이코노미의 개념이 정말로 허상이라면 - 즉,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념이 아니라면 - 혁명적인 수준의 새로운 BM이 등장하지 않는 한 블록체인 업계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거꾸로 말해 네트워크 고유의 "토큰"에 수익 모델부터 보안까지 거의 모든 측면을 의존하는 현재의 상황을 조금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도 있다고 느꼈다. ICO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빠져들어 이 업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지만, 그 몇 년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현재의 토큰 기반 모델은 비즈니스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글에서는 필자가 어떠한 이유로 "토큰", 그리고 "토큰 이코노미"라는 개념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는지를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드리고자 한다.

비트코인과 토큰 이코노미

블록체인과 비트코인 - 그리고 토큰 - 은 별개로 바라보아야 한다지만 (내 입장 또한 마찬가지이다), 블록체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비트코인으로 처음 대중화되었기 때문에 (각주: 블록체인과 비슷한 해시 기반 그래프 모델들은 70년대 이전부터 존재했다) 블록체인에 관한 어떠한 이야기든 관계없이 시작하기에 앞서 비트코인의 사례를 우선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우선 이 "토큰 이코노미"라는 개념의 기원을 알아보기 위해, 블록체이너들의 영원한 경전인 비트코인 백서로 다시 한 번 돌아가보도록 하자.

물론 비트코인 백서에는 토큰 이코노미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엄연히 블록체인의 무결성을 유지하기 위한 알고리즘, Proof-of-Work의 일부에 비트코인의 발행 메커니즘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 부분을 토큰 이코노미의 기원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정확히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블록체인의 무결성을 유지하는 알고리즘에 "비트코인 발행" 메커니즘을 끼워넣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비트코인 백서가 이를 설명한 뉘앙스과 사토시의 bitcointalk.org에서의 언행들을 잘 살펴보면, 그 의도가 단순히 "토큰 발행을 통한 노드 보상"의 차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좀 더 살펴보자.

우선 비트코인 백서 자체에는 Incentive라는 별도의 문단으로 이 "보상"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있다. 직접 자세히 읽어보시길 권해드린다:

6. Incentive
By convention, the first transaction in a block is a special transaction that starts a new coin owned by the creator of the block. This adds an incentive for nodes to support the network, and provides a way to initially distribute coins into circulation, since there is no central authority to issue them. The steady addition of a constant of amount of new coins is analogous to gold miners expending resources to add gold to circulation. In our case, it is CPU time and electricity that is expended.
The incentive can also be funded with transaction fees. If the output value of a transaction is less than its input value, the difference is a transaction fee that is added to the incentive value of the block containing the transaction. Once a predetermined number of coins have entered circulation, the incentive can transition entirely to transaction fees and be completely inflation free.
The incentive may help encourage nodes to stay honest. If a greedy attacker is able to assemble more CPU power than all the honest nodes, he would have to choose between using it to defraud people by stealing back his payments, or using it to generate new coins. He ought to find it more profitable to play by the rules, such rules that favour him with more new coins than everyone else combined, than to undermine the system and the validity of his own wealth.

사토시 나카모토는 애초에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영원히 토큰 발행으로만 유지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는 비트코인의 최대 발행량이 2100만 개로 한정된 것에서도 드러나지만, 상기의 문단에서 "신규 비트코인 발행"이 설명되는 방식만 보아도 잘 드러난다. 비트코인과 같은 탈중앙화된 시스템에서는 중앙화된 화폐 발행기관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네트워크 초기 비트코인을 신규발행해 유통시키기 위한 일시적인 방법으로 초기 블록 채굴자에게 비트코인을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줌으로써 채굴자들이 정직할 수 있도록 하는 인센티브로 사용한 것이다.

이 둘 중 우선시되는 것은 인센티브가 아니라 발행권한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새로운 비트코인을 탈중앙화된 방법으로 발행하기 위하여 정직함을 유지하기 위한 부가적인 유인요소로서 블록 채굴자에게 발행권한을 주었을 뿐, 그 반대로 블록 채굴자에게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비트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로 상기 문단에서도 목표된 비트코인 발행량(2100만 개)가 모두 발행되면,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순수한 트랜잭션 수수료만으로 채굴자들에게 보상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물론 모두 알다시피 상황은 사토시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비트코인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버블과 인플레이션의 주인공이 되었고, 현재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대규모 채굴장들은 비트코인의 트랜잭션 수수료 정도로 유지될 수 없을 정도까지 성장해버렸다.)

전반적으로 본래 비트코인의 디자인은 경제적인 인센티브의 필요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대규모 네트워크를 구동하기 위하여 참여자들의 정직함을 유도해내고 네트워크 유지에 대한 최소한의 경제적 보상 차원의 인센티브는 필요하지만, 네트워크 참여자의 거의 모든 행동을 경제적 메커니즘으로 통제하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사토시의 인센티브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BitShares, Steem 및 EOS의 창업자인 댄 라리머 (bytemaster)와의 bitcointalk.org 포럼 논쟁에서도 드러난다. 링크된 포럼 쓰레드는 "자판기 문제"라 불리는, 비트코인 블록체인의 결제처리 시간 최적화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현대 "확장성 문제"의 시초격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 자리에서 댄 라리머는 사토시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의 해결책을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첫 번째는 비교적 소액 결제처리를 담당할 수 있는 중앙화된 사업자인 "비트 은행"의 도입, 두 번째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유지에 도움이 되는 모든 일에 추가로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그는 비트코인 블록체인 풀노드 운영, 제출된 트랜잭션을 블록에 최초로 넣는 것, 그 제출된 트랜잭션을 모든 노드에 동기화하는 것 등등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며 자원을 소모하는 작업이라면 일괄로 일정액의 수수료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자원의 소모에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경제학의 기본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https://bitcointalk.org/index.php?topic=532.msg6306#msg6306 원래 이 9년 된 쓰레드의 역사를 짚으면서 내가 얼마나 블록체인 고인물인지 인증하는 장문의 글을 쓰려고...

Gepostet von Daniel Hong am Samstag, 18. Mai 2019
해당 쓰레드에 대해 내가 얼마 전 Facebook에 남긴 코멘트.

이 주장이 왜 성립하지 않는지는 다른 회원이 남긴 답글에서 잘 설명되어 있다. 자원의 소모가 어떠한 메커니즘 기반의 시스템에서 정당화되려면 부(富)의 교환을 동반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원의 소모가 제공자와 수혜자 사이의 이해관계에 들어맞는다면 모든 문제를 경제적인 인센티브로 풀어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I used to have similar thoughts, but I decided I was wrong. It turns out that BitCoin is peer to peer in the sense that tier-1 internet providers are peer to peer. It is not P2P in the same sense that bittorrent is P2P.

Satoshi points out that he sees the NEED for at most 100,000 nodes verifying transactions and logging blocks. Others would use those nodes in a more client/service fashion. If I was guessing that number I would put it much lower (3<X<100) independent interested parties. Anyone can choose to be one of those X parties, or can choose to validate some or all of the work of those X parties, but only a small number are really REQUIRED.

Because in effect, the entire block list is mostly a distributed notary service. And though that requires rigor, it is not a particularly hard job.

So who would choose to do that job for free?

Knightmb for one. I'm have no doubt that many others like NewLibertyStandard will as well. Why Knightmb specifically? Well he has lots of coins and his business model and personal wealth relies on a well functioning honest system. Without that, his wealth and business simply evaporate. It is altruism and cooperation though self interest.

If you want a real world example consider the internet itself. At its amorphous core are about 7 tier-1 service providers. They are called tier-1 only because each has a mutually self interested "peering agreement" with the other six providers. That means these huge services providers move phenomenal amounts of date back and forth with zero accounting and zero payments among each other. They make all their money by selling their service to NON-tier-1 providers who make their money from selling it to you.

There is nothing to stop anyone from becoming a tier-1 provider. All you have to do is convince the others that it is in their self interest to peer with you. So for a example, Google is thought to pay zero in bandwidth to transmit youtube videos. There is enough traffic both ways, that it is in everyones self-interest to peer with them.

I expect that the same will happen with BitCoin. All the internal accounting and transfers will be free. (with the exclusion of transaction fees meant to avoid spam and mischief). Value will be created at the edges where people exchange bitcoins for something else of value.

위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비트코인에서의 P2P는 비트토렌트 등 기존의 P2P 솔루션과는 조금 다른 뉘앙스의 방식으로 동작한다. 예컨대, 현대 인터넷 (월드와이드웹) 아키텍처에서 1계층 (Tier 1) ISP들은 서로 간 막대한 양의 데이터와 트래픽을 주고받는데도 사실상 서로에게 거의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는다. 물론 서로 간의 트래픽 불균형이나 기타 정치적 문제로 인해 특정 경로로의 라우팅이 일시적으로 차단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1계층 ISP들이 서로 간에 주고받고 처리하는 데이터와 트래픽의 양이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서로 간 지불해야 할 사용료가 사실상 상쇄된 셈이 되어 서로 간 어떠한 인프라 사용료도 지불하지 않는다 (이를 위하여 1계층 ISP들끼리 체결하는 계약을 Peering Agreement라고 부른다). 대신, 이들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구역으로 라우팅을 요청하는 하위 ISP들로부터 인프라 사용료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구글 등 인터넷 사업자들이 일반적으로 ISP에 직접적으로 망사용료를 납부하지 않는 이유도 ISP의 망을 통해 서로 간 주고받는 트래픽이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들어맞기 때문에 굳이 금전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무방하며, ISP들은 최종 사용자들로부터 한 번만 네트워크 사용료를 받으면 된다. 트래픽 차분이 있다면 그만큼에 대해서만 상대방에게 정산해주면 끝나는 문제이다. (물론 상호접속고시를 포함한 이러한 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해외사업자에게 무조건적으로 망사용료를 부과해야 한다거나, 역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해외사업자들이 국내에 무조건 서버를 설치할 것을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 국가의 국가기관ISP들이 있기는 하나, 본 글의 핵심은 아니므로 넘어가기로 하자.)

Tiered World Wide Web Architecture (Source: Wikipedia)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특정 목적(결제처리)을 위한 월드와이드웹이라 해석하면,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라우팅을 수행하는 ISP들 대신 트랜잭션을 처리하고 블록체인을 유지하는 채굴자들이 있고, 최종소비자인 비트코인 사용자들이 채굴자들에게 수수료(망사용료)를 지불하는 방식인 셈이다. 나머지의 경우 마찬가지 원리로 이해관계가 서로 상쇄되기 때문에 별도로 경제적인 인센티브를 둘 필요가 없다. 예컨대 블록체인 풀노드의 경우, 네트워크의 탈중앙성 유지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거꾸로 블록체인의 데이터에 보다 자세하게 접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비트토렌트 등 다른 P2P 네트워크들에도 월드와이드웹과 동일한 이해상쇄의 원리가 적용되어 있다. 비트토렌트에서도 마찬가지로, 참여자 모두가 업로더임과 동시에 다운로더이기 때문에 트래픽 상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따라서 별도의 경제적 인센티브 없이도 비트토렌트라는 시스템이 20년 가까이 아주 잘 유지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억지로 경제적 인센티브를 얹으려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시스템의 균형을 깰 뿐이다.

비트코인은 이 정도로 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플랫폼 블록체인들의 사례도 살펴보자.

이더리움과 플랫폼 블록체인, 그리고 스테이킹

이더리움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비트코인의 블록체인 상 트랜잭션 개념을 튜링 완전하게 확장해, 스마트 컨트랙트라는 새로운 종류의 소프트웨어를 구동할 수 있도록 구성된 블록체인 플랫폼이다. 트랜잭션의 개념 자체가 "실행"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수수료의 개념 또한 일반화해 확장할 필요가 생겼는데, 그래서 만들어진 개념이 바로 "가스"이다.

가스는 기본적으로 비트코인 수수료의 일반화된 형태이다. 비트코인에서 코인 거래를 처리하기 위해 채굴자들에게 수수료를 지불했듯, 이더리움 블록체인에서 스마트 컨트랙트를 실행하기 위해 채굴자들에게 그 사용료인 가스를 지불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앞서 언급한 비트코인과 같은 원리로 별 문제가 없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비트코인에서 사용되던 (그리고 가뜩이나 느린) PoW 알고리즘이 확장되지 않고 거의 그대로 넘어오면서 일반화된 Application들을 위한 Compute 요구사항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Layer 2를 제외하고서)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Proof-of-Stake, 즉 지분증명이다. 일정액을 네트워크에 "맡겨놓은" (스테이킹) 블록생성자들은 자신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정직한 방향으로 행동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자산을 슬래싱 당하므로), 외부 공격자들은 정직한 블록생성자들만큼의 자산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블록체인의 거버넌스 과정에 참여조차 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자산을 맡겨놓고 블록생성자 일을 하면서 최종사용자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수익까지 낼 수 있다. PoW처럼 무분별한 자원 소모로 인한 환경 파괴 우려도 없다.

개인적으로 PoS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상당히 많지만 (거버넌스의 공정성 문제를 포함하여), 내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블록생성자들에게 배분되는 수익이 순수하게 수수료, 즉 가스에서 나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 상황에서는 블록생성자에 참여할 만한 충분한 메리트가 없다. 그렇다고 가스를 올리자니 가뜩이나 부족한 사용자층이 더 떠나갈 것이다).

아, 물론 모든 PoS 모델이 무조건 더 돈을 찍어내는 방식(높은 인플레이션률)으로 적자를 메꾼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그 반대현상인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물론 필요하다. 문제는 해당 네트워크들에서 스테이킹 및 수수료 정산에 사용되는 "화폐" 토큰들이 "화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가령, 가장 단순한 형태의 PoS 합의 블록체인과 그에 사용되는 자체 토큰을 가정하자. 이 때, 블록생성자에 의해 스테이킹된 자산의 "실수익률"은 해당 토큰의 가격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그 자체가 거꾸로 가격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의 블록생성자가 그 지위를 포기하고 스테이킹된 자산을 모두 되찾아간다면 그 블록생성자는 해당 자산을 모두 거래소에서 매도할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당연히 해당 토큰의 가격은 내려간다 (스테이킹된 자산이 애초에 해당 토큰으로 되어 있었으므로). 이러한 경우, 실제 해당 블록생성자에게 돌아간 부(富)의 이동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정말 "순수하게" 본래 위임(Delegate)되어 있던 자산과 사용자가 지불한 수수료, 그리고 토큰 이코노미에 의한 인플레이션의 합만이 빠져나간 것일까? 혹은 - 본인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 해당 토큰 자산의 가격 차익으로 인해 다른 블록생성자와 일반 사용자들의 자산까지 빼앗아 간 셈이 된 것인가?

이러한 문제는 코스모스와 같이 그 특성상 다수의 자산(토큰) 종류를 오가며 스테이킹이 이루어져야 하는 네트워크에서 특히나 더 두드러진다. 다른 네트워크로 넘어가기 위해 (인터체인이므로) 자산의 종류를 변경할 경우, 해당 자산에 대한 매도거래는 필연적이다. 이 경우 위와 같은 딜레마는 훨씬 더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다른 네트워크로 전환된 자산이 그 이전 네트워크에서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등의 다른 문제들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장 상기 언급한 "수수료" 모델에 비추어 보았을 때 부의 이동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장기적으로 엄청나게 큰 문제이다. 하나의 자산을 여러 네트워크에 본딩해놓고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는 난제 중 하나로 남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결국 이 모든 난장판의 근본적인 문제는, 모든 네트워크에서 표준화되어 범용으로 활용될 수 있는 단일 디지털 화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화폐"가 각 네트워크에 종속되어 있으니 당연히 위와 같은 자산교환 딜레마는 매번 발생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암호화폐는 그 특성상 유동성이 매우 높으므로, 자산교환 시 그 차액이 매우 커지는 경우 또한 빈번할 것이다. 이게 뭐가 제대로 된 "이코노미" 모델인가?

필자가 Gemer 등의 프로젝트에서 자체 토큰 발행을 꺼리는 것 또한 그래서이다. 가능하다면 일반 신용카드 결제나 페깅된 법정화폐(스테이블코인), 비트코인 정도 범위 내에서 모든 네트워크 상 수수료 정산이 가능해야만 복잡한 경제모델적 고려 없이 Dead Simple한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토큰 이코노미"라는 말은 "화폐의 춘추전국시대"와 "화폐의 판매를 통한 자금조달"이라는 전례없는 상황이 만들어 낸 기형적인 표현이며, 애초에 수수료 정산에 사용될 화폐를 단일화할 수만 있다면 각 서비스 - 또는 인프라 - 개발자들이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앞서 비트코인에서도 언급했듯, 탈중앙화된 인프라라도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지도록 구성한다면 최종적인 수수료 정산 한 번으로 간단하게 끝날 수 있다. 애초에 "재단"이 일방적으로 수익을 가져가는 "토큰세일"을 통해서만 그 가치가 성립할 수 있는 토큰이라면, 더 이상 "화폐"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은 덤이다. 우리는 그저 사용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탈중앙화된 서비스 하나 만들고 싶을 뿐인데, 대체 왜 복잡한 경제모델까지 짜 가며 결제화폐에 대해서까지 고려를 해야만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수수료 정산과 결제는 최대한 간단해야 한다.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고. 블록체인이라고 예외는 없다.

그 외의 "토큰 이코노미": 오라클은 어쩌고?

심지어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는 그나마 "화폐" 역할을 할 수 있는 플랫폼 토큰들에 한정되어 있다. 기본적인 화폐 역할조차 못 하는 것들은 논의할 가치조차 없기에 그에 관한 내용들은 모두 생략한다.

또 한 가지 주목받는 부분은 "이미 존재하는 자산의 토큰화"인데, 가령 부동산이나 기업의 지분 (STO 포함) 같은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라면 더더욱 "토큰 이코노미"라는 개념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현존하는 자산을 블록체인 위에서 표현해 유동화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토큰의 가치를 "조정"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헛소리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이러한 토큰들의 경우에는 철저하게 기성 경제법칙을 따라야만 한다. 거래의 유동화와 블록체인 상 프로그래밍 유연성 등을 위해 이미 존재하는 기성의 자산을 블록체인 위에 "매핑"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걸 누가 하느냐다.

현실은 가상세계와 완벽하게 1:1로 매핑될 수 없다. 현실의 정보를 가상세계인 블록체인으로 가져오려면 결국 누군가를 신뢰해야 한다. 그 신뢰구조가 충분히 탈중앙화되어 있지 않다면 현실의 자산과 비교했을 때 아무런 상대적 이점이 없다. "토큰 이코노미"가 개입해 누군가의 배를 불리는 데에 사용되지 않았는지 확인해볼 시점이다.

결론

지금까지 필자가 "토큰 이코노미"라는 표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간략하게 말씀드렸다. 길고 복잡해 보이지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대부분의 경우, 행동 메커니즘 디자인만 잘 되어 있다면 이해관계의 상쇄로 인해 굳이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없다.
  2. 이러한 모델에서는, 최종적인 수혜자가 그 차익분의 수수료를 정산하기만 하면 모든 이해관계는 간단히 정리된다. ISP의 Peering Agreement와 비트코인의 수수료, 이더리움의 가스 모델 등이 그 예시이다.
  3. 애초에 "화폐"로 사용되어야 하는 토큰에 경제모델이 필요해진 이유는 애초에 그 토큰이 제대로 된 화폐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네트워크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잦은 자산교환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불로소득이 생기며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의 부를 잃는다.
  4. 이러한 문제는 모든 네트워크에서 사용될 수 있는 단일 디지털 화폐가 도입된다면 모두 해결된다. 이 경우 애초에 "토큰 이코노미"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고 고려할 필요도 없다.
  5. 아직 탈중앙화된 형태의 단일 디지털 화폐가 도입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는 수수료 정산에 자체 토큰을 사용하게 될 경우 필연적으로 (3)의 딜레마가 생긴다. 따라서 사용자경험을 생각한다면 외부에서 이미 검증된 결제수단을 불러와야 문제를 피할 수 있다.
  6. (3)에서 토큰이 화폐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토큰을 "판매"함으로써 이미 누군가가 큰 이득을 취했기 때문이다. 즉, 가치중립적이지 못하며 그 시점 이후부터는 "화폐"가 아닌 "증권"으로 해석되는 것이 맞다.
  7. 화폐의 탈을 쓰지도 않은 기타 다른 토큰들에 대해서는 논의할 가치도 없으므로 논외로 한다. 단, 토큰화된 실물자산의 경우 오라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가능성 그 자체는 무궁무진하나 이 경우에는 철저히 실물경제의 논리를 따라야 하므로 역시 "토큰 이코노미"라는 용어는 성립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