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 와서 백서 작업하고 관련해서 VC들 만나러 다니느라 한동안 Facebook에 게시글이 뜸했다. 일단 진행하고 있는 일 초기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다시 각 잡고 글을 쓸 수 있을 것도 같으나,...

Gepostet von Daniel Hong am Freitag, 5. Juli 2019

최근 한국에 와서 백서 작업하고 관련해서 VC들 만나러 다니느라 한동안 Facebook에 게시글이 뜸했다. 일단 진행하고 있는 일 초기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다시 각 잡고 글을 쓸 수 있을 것도 같으나, 아직까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VC라 하면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기성적인 벤처캐피탈의 성격이 강한 액셀러레이터, 두 번째는 토큰 세일이라는 새로운 자금모집 방법을 기반으로 하는 크립토펀드다. 이 두 가지 분류가 모든 경우에서 명확히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성격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상기 두 부류의 VC가 자신들이 투자하는 팀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예상외로 극명하게 다르다. 솔직히 나도 직접 다녀보기 전까지는 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내가 제시하는 비교점들을 제외하고도 상당히 다양한 측면에서 차이점이 존재하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느꼈던 차이점들을 나열하자면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먼저 투자 대상자의 자격요건. 기성 액셀러레이터들은 대상 팀들의 투자적격성을 심사함에 있어 상당히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학벌이나 경력 등 본인의 능력을 손쉽게 증명해낼 서류적 요소가 없다면 (i) 해커톤과 같이 즉석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봄으로써 본인이 투자금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ii) 서로의 부족함을 효율적으로 메워올 수 있는 팀을 꾸려올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고서 아이디어만 가지고는 도저히 이들을 설득해낼 수 없다.

이들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듣고서도 쉽게 투자를 결정하지 않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기성 액셀러레이터들은 아이디어가 아닌 팀, 즉 사람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기성 스타트업 신에서는 아무리 훌륭해 보이는 아이디어라도 대부분이 실패할 정도로 그 실패확률이 매우 높다. 따라서, 기성 VC들은 한 번 창업 아이디어가 실패한다고 할지라도 또다시 도전해 끝까지 투자금을 회수해올 만한 여력이 있는 팀을 선호한다. 흔히 "바퀴벌레 같은 팀"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만큼 투자 심사 시 아이디어 자체는 거의 중요하지 않으며 팀의 능력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반면, 기성 VC 출신이 아닌 크립토펀드들은 정반대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억지로 팀을 꾸려내려는 경향성이 있다. 잘 짜인 아이디어, 즉 백서 하나만 있으면 크립토 마케팅과 토큰 세일, 그리고 상장을 통해 손쉽게 프로젝트를 엑싯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내실이 강한 팀"을 꾸리기보다는 "코인 투자자 입장에서 좋아 보이는 팀"을 구성해 오기를 원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같이 일하는 것이 쉽지 않다. 빠르게 이전 프로젝트가 엑싯해야 그 돈으로 다시 다음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는데, 현재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하거나 한 번 실패하면 빠르게 팀을 해체하고 다음 프로젝트에 투입해버린다. 그러니 장기적 관점에서의 팀워크를 기대할 수가 없다.

팀이 아닌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프로젝트가 굴러가다 보니 문제가 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개발자다. 크립토펀드들은 개발자를 "각 잡힌 백서를 현실화시켜주는 마법사 내지 요정"으로 생각한다. 사실 마법사나 요정보다는 노예에 가까운 존재이기는 하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일단 앞뒤가 전혀 안 맞게 홍보용으로 쓰인 설계백서를 던져놓고 아무런 구체적 요구사항도 없이 이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 블록체인 코어로 개발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니 당연히 개발을 할 수가 없다. 물론 이런 일이 가능한 천재적인 개발자가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이런 분들은 절대 크립토펀드와 같이 일을 하지 않는다. 혼자서 조용히 다니거나 대기업에서 다른 분야 일을 하고 있겠지. (애초에 왜 사토시가 익명 뒤에 숨어 비트코인을 공개했겠는가?)

그러니 이 판에서 개발자나 엔지니어의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다. 기존 다른 프로젝트의 코드를 깃허브에서 포크해오거나 레퍼런싱해 와 그 코드를 기반으로 개발을 진행하던지 (말이 포크지 그대로 코드 복사해놓고 패키지 이름만 살짝 바꾼 것들도 수두룩하다. 그 중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도 몇 개 있다. 이전 커밋내역을 모두 지우고 자신들이 모두 개발한 것처럼 위장하는 경우까지 있으니 말 다 했다), 아니면 이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포기하던지.

이렇게 되면 당연히 상부에서 압력이 들어온다. 코드 포크해서 진행한 경우에는 이럴 거였으면 애초에 설계단에서 기술적으로 지적은 왜 했냐며 (...) 까이고, 아예 포기한 경우에는 너네 개발자 맞냐며 까인다. 구현 능력과 아키텍처 리서치 및 설계는 엄연히 다른 분야임에도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개발자나 엔지니어, 또는 리서처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개발이 가능할 정도의 기술명세를 백서에 명시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백서 작성자들은 어디까지가 개발 가능한 범위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토큰을 최대한 많이 팔아야 하니, 비현실적인 약속들을 백서에 지나치게 많이 명기해놓는다. 컨센서스부터 네트워킹까지 모든 코드를 직접 개발하겠다는 것과 같은 것들인데, 잘 아시다시피 통상적인 개발자가 이 모든 것을 직접 개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뿐더러 애초에 그럴 이유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기존 오픈 소스 코드를 단순히 "참조"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갈등이 상기는 경우가 잦다. 펀드들과 C급 임원들이 개발 프로세스가 정확히 어떻게 일어나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에 따르는 고질적인 문제다. 스마트 컨트랙트나 플라즈마 체인 정도로도 충분히 구현 가능한 기능을 위해 아무 의미 없는 독자적인 메인넷과 컨센서스를 다시 짠다고 주장하는 모 프로젝트 같이 말이다 (정확히 어디인지는 노코멘트하겠다.)

반면 기성 액셀러레이터들은 비교적 개발 프로세스를 상당히 잘 이해하고 있다. 포크 프로젝트나 댑이라 할지라도, 사업상의 가치가 있고 훌륭한 팀을 가지고 있다면 일단 투자한다. 일부 크립토펀드와의 구분이 모호한 액셀러레이터의 경우 "현실적인 코드"를 "비현실적인 약속"으로 포장해 거액을 벌어들이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그들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업계 전반적인 문제라고 바라보는 편이 더 나을 듯하다.

그래서, 이렇게 불만이 많은데 너는 왜 펀드들하고 같이 일하느냐고? 뭐 간단하다. 나는 빽도 없고 친구도 많이 없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데에 있어서 제약사항이 상당히 크게 작용한다. 백업 때문에 풀타임으로 개발에 뛰어들 수 있는 상황도 아니며, 아직까지 미성숙한 "어린애" 이미지가 상당히 남아있다. 이런 데다 거액을 투자하겠다는 용의를 보이는 곳은 크립토펀드 말고는 없다. 아직 더 찔러보고 다녀봐야겠지만, 직접 발로 뛰어다니는 것 말고는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