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biz.chosun.com/svc/article.html?contid=2019081800019 1. 중국 인민은행이 달러화 견제의 목적으로 CBDC를 발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전반적으로 크립토...

Gepostet von Daniel Hong am Sonntag, 18. August 2019

http://m.biz.chosun.com/svc/article.html…

1. 중국 인민은행이 달러화 견제의 목적으로 CBDC를 발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전반적으로 크립토 커뮤니티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Digital Asset의 보편화가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내 개인적인 시각은 좀 다르다. 리브라 등의 "스테이블코인"과 CBDC는 비트코인이 등장하게 된 바로 그 Pain Point와 전면으로 배치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블록체인이 본래 제시한 가치를 크게 훼손하게 될 것이 뻔하다고 본다.

2. 우선 공유되고 있는 저 기사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무창춘 인민은행 지불결제사 부사장은 실제로 "RMB CBDC 발행은 굳이 블록체인일 필요가 없으며 도입이 고려될 수 있는 기술 중 하나일 뿐이라고 발언했다. 중국 내에서 CBDC가 실물 화폐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최소 30만 TPS 이상의 처리성능을 가진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예측되는데, 블록체인 기술로는 (아무리 중앙화된 네트워크라도) 그만큼의 처리성능을 내놓기가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상 인민은행의 CBDC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암호화폐"와는 거리가 다소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발언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3. 중국이 CBDC 발행을 추진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자금흐름 추적의 용이함, 두 번째는 추가적인 유동성 확보를 통한 달러화 견제, 세 번째는 중국 내에서의 새로운 핀테크 서비스를 위한 공통된 플랫폼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4. 현금은 현대사회에서 추적되기 어려운 거의 유일한 법정화폐이다. 만약 현금 자체를 완전히 디지털화해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네트워크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자금세탁의 가장 용이한 경로가 사라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 중국 내에서 위챗페이와 알리페이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고.

5. 그러나 중국이라는 일당독재 체제의 정부 아래에서 과연 이러한 "추적의 용이성"이 순수한 자금세탁 및 테러자금 유통 방지 목적으로만 사용될지는 의문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의 정부든 마찬가지이다). 앞선 글에서 인간의 거버넌스는 근본적으로 신뢰될 수 없기 때문에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은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었는데, 금융 거래에서 물리적인 수준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될 수 없다면 이러한 거버넌스의 문제에 근본적으로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결국 중국 당국은 자국민을 더욱 더 엄격하게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법정화폐의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6. 반대로 말해, 이렇게 거버넌스가 충분히 분산되지 않은 상태에서 분산 장부 (distributed ledger)의 개념이 도입되는 것은 오히려 감시와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게 될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현금 거래내역이 영원히 기록되는 네트워크가 현실화된다면, 조지 오웰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전체주의적 오웰리안 디스토피아가 따로 없을 것이다 (...)

7. 추가로, 거버넌스가 충분히 분산화되어 있지 않다면 높으신 분들의 의도대로 그 공개되는 장부를 조작할 수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남아 있다. 엄한 사람의 거래 내역을 조작해놓고 테러자금 조달범으로 몰아간다거나, 반정부 인사의 모든 종류의 금융거래를 차단하는 것 같은 일들 말이지. 이럴 경우 블록체인(이라기보다 분산 장부)은 검열저항적인 P2P 금융거래를 이루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검열 그 자체를 오히려 훨씬 강화하는 무기가 되어 되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8.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행이 달러의 유동성을 크게 높여 국제사회에서의 달러 종속성을 강화할 것이 뻔하니, 이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물론 클 것이다. 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경제대국 사이의 기축통화 패권다툼 따위 일에는 큰 관심이 없고, CBDC의 "디지털적 유동성"이 가져올 부가효과에 훨씬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바로 디지털 서비스에서의 결제처리가 엄청나게 쉬워진다는 점이다.

9. 신용 카드가 등장하고 금융 거래가 디지털화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모든 금융 거래는 P2P였다. 화폐의 발행 주체는 여전히 중앙은행이었지만,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직접 상인과 대면해 거래하는 수밖에 없었기에 소비자와 상인 간에는 물리적인 현금(혹은 지급수표)이 "직접" 오갔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물건 또는 서비스가 오가는 건 나와 상인 사이인데, 그 거래프로세스 자체에 제 3자가 왜 개입해야만 하는가?

10. 현재까지 디지털 기반 결제가 제 3자를 필연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온라인 상에서 부를 명확히 표현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는 모든 데이터가 무한정으로 복사 또는 수정될 수 있고, 따라서 거래의 무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 3자의 결제 네트워크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11.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 비트코인이다. 다만 비트코인이 현재까지 결제수단으로서 널리 사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결제속도(와 그로 인한 각종 UX 문제), 그리고 가격의 불안정성이다. 전자는 현재 각종 연구를 통해 조금씩이나마 개선되고 있지만, 후자는 가치 조절 메커니즘이 부재한 특성상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비트코인이 "화폐"라기보다는 "자산" 취급을 받는다).

12. 만약 중앙은행이 - 블록체인이든, 아니든 간에 - 디지털적으로 처리 가능한 법정 화폐직접 제공할 수 있다면 - 현재 디지털 서비스에서 디지털 결제에 소요되는 각종 비용이 크게 감소한다. 거기다 서비스의 로직이 탈중앙화되어 있더라도 오라클 문제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거래 자체는 P2P이므로). 마치 과거 상인과 직접 대면해 직접 현금을 주고받았듯,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와 바로 돈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거기다 이번에는 그 거래를 프로그램으로 자동으로 일어나게끔 구성할 수도 있다. 속도와 UX만 해결된다면 서비스 개발사 입장에서는 도입을 미룰 필요가 전혀 없다. 당장 나라도 -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입장을 가정한다면 - 한국은행이 CBDC를 발행할 경우 비트코인 결제보다 원화 CBDC 결제를 우선으로 받겠다.

13. 다만 중앙은행이 운영하는 CBDC의 가장 큰 취약점은, 앞서 언급했듯이 거버넌스에 있다. CBDC의 대중화는 디지털 서비스에서의 결제를 극도로 편리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 거버넌스가 잘못될 경우 오웰리안 디스토피아로 가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 금융거래가 막힌 상황에서는 그 어떤 개인도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14. 그래서 나온 것이 MakerDAO 같은 "탈중앙화된 스테이블코인"인데, 사실 그 가치보장 로직이 컨트랙트로 분산화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잘못된 거버넌스의 위험을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다. 가령 예를 들어, 1 Dai는 1 USD에 "페깅"되어 있다. 그러나, 전쟁 등의 극단적인 상황이나 Fed의 잘못된 통화정책 등으로 인해 USD의 상대적 가치가 반토막난다면 결국 Dai 또한 불안정한 인간의 거버넌스에 영향을 받는 셈이 된다. 물론 리브라 등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custodian에게 채권 등 안전자산을 물리적으로 분배해 놓는 방법을 사용하나 이마저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15. 앞서도 언급했지만, 사이퍼펑크가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의 불안정한 거버넌스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비트코인은 가치 전달의 "과정"을 구축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부의 가치 그 자체가 거버넌스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일에는 실패했다. 물론 "그건 너가 선진국에 살아서 그렇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비트코인이 더 안전한 자산이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으나 그 "자산의 안정성"이라는 개념조차 상대적인 것이라 논의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지구 어딘가에서는 안전자산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상대적인) 가치 불안정성 탓에 안전자산이 아니라면, 그것을 "모든 곳에서" 유의미한 안전자산이라 칭할 수 있을까?

16. 그러니까 정말 비트코인의 "비전"을 믿는 사람이라면, CBDC 발행에 환호할 것이 아니라 비트코인이 남긴 숙제에 집중하는 편이 나을 듯 싶다. 결제속도는 이미 많은 기술적인 논의가 이루어졌으니, "외부 거버넌스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절대적인 부의 개념을 탈중앙화된 방법으로 구축할 수 있는가"라는 또다른 숙제에 대해 논의를 시작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17. 인프라의 탈중앙화와 가치 전달의 탈중앙화는 이제 분리된 개념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이제 인프라가 탈중앙화되었어도 CBDC 덕분에 직접 P2P 결제를 수행할 수 있으니까. 탈중앙화의 "비전"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어야 할지는 이제 기획자와 개발자들의 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