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CONOMICS

새로운 파이와 경제적 재분배

정원제 입시, 주어진 파이, 그리고 제로섬 게임 우리나라 대학 입시 요강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학과별 정원을 빼곡히 나열한 정원표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수시를 끝내고 나서...

Posted by Hyunse Lee on Saturday, January 19, 2019

대체로 동의하는 글이지만, 몇 가지만 덧붙이고 싶은 점이 있어 공유합니다. 원저자인 Hyunse Lee님의 동의를 얻어 작성했습니다.

1.

물론, 새로운 파이를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전 택시와 카풀 업계 간의 갈등을 다룬 글에서도 언급했던 점이지만, 투쟁할 대상, 즉 파이 자체가 없다면 그 파이의 분배를 둘러싼 모든 투쟁과 노력, 그리고 논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점에서 근본적으로 “주어진 파이 내에서만 일어나는” 제로섬 게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저 또한 의견을 같이합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파이”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 각 개인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기회는, 아무리 출발선을 동등하게 맞추고자 해도 절대 평등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가정의 금전적 상황이나 부모의 인맥, 직장, 심지어는 심신의 건강과 지능 또한 포함됩니다. 경제적 풍족함이나 인맥 등 “사회적” 컨텍스트에서 주어지는 것은 (극심한 하향 평준화를 감안한다면) 어떻게든 평등하게 맞출 수 있겠지만, “심신의 건강”이나 “지능” 같은 “고유속성적” 컨텍스트의 것들은 고문과 같은 극단적이고 인권유린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는 한 “평등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새로운 파이”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류의 수많은 기회가 이미 “본인이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이미 주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까다로운 바늘구멍을 통과했다고 해서, 새로운 파이를 반드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파이”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인구 분포 스펙트럼상 최상위권에 있는 사람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입니다. 가정 환경 등 사회적인 요인과 지능 등 고유속성적 요인의 합을 이 스펙트럼의 기준으로 잡았을 때, 최상위권의 사람들 - 즉, (i) 고유속성은 평범하지만, 부모로부터 큰 부와 좋은 환경을 물려받은 사람과 (흔히 “금수저”) (ii) 사회속성은 평범하지만, 건강한 심신과 뛰어난 지능을 물려받은 사람 (흔히 “노력이나 재능으로 성공한 은/동/흙수저”)은 사실상의 등가로 취급될 수 있으며, 둘 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구조적으로 스펙트럼의 하위권에 위치하게 됩니다.

결국, “새로운 파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ii)의 경우를 (i)의 경우와 동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조치에 불과합니다. 다만, 문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능”과 “사회적 컨텍스트”를 완전하게 동등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2.

상기의 모델에 따르면, 신체/정신적으로 타고난 조건과 부모에 의해 사회적으로 물려받은 조건은 완전히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합니다. 앞서 서술했듯 인간의 모든 “기회”과 “조건”들을 완전하게 동등하게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통 우리가 말하는 “평등한 기회”를 준다는 것은 이 두 가지 조건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문제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 있습니다. 평범한 수준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부를 물려받은 사람과,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많은 부를 물려받지는 못한 사람의 삶을 비교할 때 절대 다수의 경우 전자가 훨씬 더 “풍족한 삶”을 살기 마련입니다. 이는 “사회적” 컨텍스트는 즉시 발현되지만, 재능의 경우 즉시 드러나지 않으며 발굴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재능을 발굴하고 실제 능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부와 교육 기회와 같은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기회 또한 일정 수준 이상으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결국 현실적으로는, 재능이 사회적 조건에 일정 부분 의존하므로 두 가지가 완전히 동등하게 취급되지는 않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엄밀하게 따지자면 “새로운 파이”를 만든다고 해서 “분배”의 문제까지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새로운 파이가 만들어지면 전체의 먹거리가 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분배의 “비율”로만 놓고 보자면 앞서 언급한 조건 간의 의존 Bias로 인해 소수에게 파이의 몫이 더 집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3.

물론 엄격하게 분배에만 초점을 맞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분배 역시 창조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새 파이가 부의 집중 심화만 초래하게 된다면, “주어진 파이만 놓고 다수의 인원이 싸우는 제로섬 게임이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새로운 파이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 모든 논의는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면요.

조건 Bias를 보정하고 모든 주어진 조건들을 동등하게 취급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새로운 파이를 만들어야 이 문제가 풀린다”라고 하기보다는 주어진 파이를 좀 더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에서부터 논의가 시작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재능이나 부가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새로운 파이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그 새로운 파이 자체를 누군가가 독차지해 버리는 구조라면 나머지 사람들은 여전히 치열한 제로섬 게임 하에 있어야 합니다. 결국 전체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겁니다.

새로운 파이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전체 논지를 보지 못한 편협한 그림만 담은 채 유행처럼 번졌기 때문에, 기성 세대가 자꾸 청년들에게 “창의성”과 “꿈”을 강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작 그들은 “창의성”을 통한 “새로운 파이”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배우지도 못했고, 기회를 부여받지도 못했습니다. 당장 하루하루가 먹고살기도 힘든데, 이런 삶과 동떨어져 보이는 거시적인 논의가 웬말입니까.

재분배라는 개념은 단순히 주어진 파이를 강제로 쪼개 나누어주는 개념이 아니라, 이런 기회의 격차를 보정해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새로운 파이”를 만들 수 있도록 경험을 심어주는 교육에의 투자, 복지를 통한 기본적인 삶의 질 보장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렇게 한다고 모두가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해내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재능을 펼치지 못한 사람들에게 뭐라도 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절대적인 파이의 수도 많아지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조각이 공평하게 돌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지. 그리고 그 많아진 조각들을 다시 재투자해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면, 연쇄적으로 더 많은 파이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지.

너무 장황한 논의를 벌인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이상적인 그림만큼은 단순히 공상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 너무 당연한 소리 같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 일단 먹고 살아야 뭐라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